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 운영자 | 2020-0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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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 8:14-17]
한세영광교회 김병옥 목사
뜻하지 않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는 온 세계와 대구 경북 지역에 사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시기를 원합니다. 감사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문제해결의 답과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나사로나 바디매오 등 몇을 제외하고는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나 출신을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한 문둥병자, 백부장의 하인, 한 중풍병자,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 혈루병을 앓는 여인, 어떤 소경 등으로 불릴 뿐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신분이나 삶의 조건에 관계없이 병든 자가 누구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고쳐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름 없는 우리들도 어떤 어려움이나 세상이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가지고 있을 때라도 주님께 나가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병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는 데만 열중하셨습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만 하면 되었지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보상을 받으려 하거나 무슨 업적을 자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치유 사역에 방해가 될까 기적을 행하시고도 잠잠할 것을 명하시거나 은밀히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29-3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났다고 하였고, 누가복음 4:38-39절에서는, 베드로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하였고,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열병을 꾸짖으시니 병이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제자들은 한없는 위로를 받고 마음의 무거움 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집과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지만 남겨진 가족들, 부모님, 아내, 자녀들, 형제들은 늘 가슴 속에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고쳐주시는 이일은 자신의 집에서 일이 생겼을 때도 주님은 고쳐주시고 일으켜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연결 된 것입니다. 또한 기적을 행하는 일이라면 제자들로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겠지만,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것이기에, 제자들도 그렇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는 주님을 참 좋아합니다. 새벽기도시간이나 시방을 할 때나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면 제 손을 잡아 주시는 것 같은 느낍니다.
저도 고3때 장티푸스를 앓아 본 적이 있습니다. 장티푸스는 4주 만에 그 생명이 결정됩니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며 펄펄 끊다가 4주를 견디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고열에 먹지 못하고 횡설수설 헛소리를 하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이 빠져 홀쭉해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다가와 나를 만지시는 주님을 고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목회하는 것도 그때 만져주신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코로나19로 고통당하는 사람들도 염려나 걱정 보다는 주님이 만져주시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병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이지만 주님은 이보다 더한 병들도 고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든 나를, 병든 세상을 고쳐주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이 들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심한 일교차가 나는 지역적 특성이나 갈릴리호수에서 나는 생선을 잘 못 먹어서, 나이가 들어서 기관지가 약해서, 생긴 열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갑작스럽게 웬 남자를 따라 가정을 버려서 난 열불이 아닐까요? 아마도 베드로의 장모는 어려운 시절에 자기 딸을 베드로에게 시집보내고 밥은 굶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렇게 부자는 아니지만 배를 소유하고 그런대로 사는 게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자기도 사위에게 의탁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위에 대한 원망스런 감정, 특히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악 감정이 그녀를 병들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몸져누운 그녀에게 예수님이 다가가 그 손을 만지셨습니다. 그 순간 열병이 떠나고 베드로의 장모가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베드로의 장모는 상한 마음이 고쳐지고 마음을 평강을 얻으므로 육신의 열병이 떠나는 경험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요한 3서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역사가 주님으로부터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일으키실 때 베드로에게 있었던 가정을 돌보지 못했던 마음의 짐이 들어지고 제자들이 동일한 은혜와 확신에 들도록 하셨기에 이 말씀은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나아가라’는 말씀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이 베드로의 장모가 앓던 열병이 떠났을 때 일어난 믿음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먹을 것이든 그것이 입을 것이든 그것이 건강이든 그것이 어떤 생활의 필요이든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필요를 채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장모를 이제 주님의 사역자로 만듭니다. 15절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수종들다’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품으면 우리 가정에서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던 사람을 바꾸어 오히려 주님의 사역자로 만들어주십니다.
인디언들에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마주 앉았을 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야,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마음속에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살고 있어서 매일같이 서로 싸운단다. 착한 늑대가 이기면 착하게 살고 나쁜 늑대가 이기면 나쁘게 사는 것이란다.” 이 때 궁금증을 느낀 손자가 이렇게 묻는답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어떤 늑대가 이기는가요?” 그 때 할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답니다. “얘야, 그것은 네가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렸단다. 좋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좋은 늑대가 이기고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나쁜 늑대가 이긴단다.” 항상 내 속에서 말하는 좋은 이야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거짓된 자아의 이야기에 솔깃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마음이 상하고 감정이 상하고 불신과 불평을 할 수 있는 형편과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깨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이 시대의 열병인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좋은 것은 우리의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은 교회와 관련된 일이거나 다른 사람을 섬기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아주 사소하고 약한 부분에까지 예수님께서 오셔서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감히 나서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셔서 우리의 약한 구석을 치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셨듯이 우리들의 손도 만져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의 손은 곧 능력의 통로를 의미합니다. 손을 통해서 능력이 나갑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손이라는 것이 단지 능력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손으로 베드로의 장모의 거칠고 상처 난 손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오랜 세월 고생으로 딱딱해진 손을 어루만지신 것입니다. 그때 그 여인의 열병이 떠났습니다. 바로 이 순간 예수님은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의 병까지도 고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질병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만지시는 순간 우리의 상처가 눈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에게 조용히 손을 내미시면서 우리의 상한 마음과 육신을 고쳐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기운을 받아 용기도 얻고 소망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의 이웃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을 믿습니다. 16절을 보시면 베드로의 집으로 저물 때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이유는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많은 귀신들린 자들을 말씀으로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쳐주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자기가 대신 그 아픔을 당하고 자기 자녀는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들처럼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더 아파하십니다. 마태는 이사야를 인용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합니다. 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때 나 홀로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간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힘들 때 “주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원망하지만 주님은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를 업고 함께 힘든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부회장을 맡아 쓰레기 소각장의 책임자로 섬긴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평상시와 같이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소각하기 위해 성냥불을 붙이고 뒤로 돌아서서 나오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제 왼쪽 발뒤꿈치가 뜨끔하며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 있던 유리병이 터져 날아온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저를 엎고 2km밖에 있던 약방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하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자기가 대신 그 아픔을 당하고 자기 자녀는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들처럼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더 아파하십니다. 마태는 이사야를 인용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합니다. 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때 나 홀로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간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힘들 때 “주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를 업고 함께 힘든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플 때 우리를 업고 함께 뛰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에서 말씀한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도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에서 확인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신음하던 주님의 고통은 바로 오늘 이 순간 내가 당하는 고통을 미리 내다보며 아파하시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코로나19 때문에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손을 만져주시는 사랑의 역사가 오늘도 우리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들이 당면한 문제와 아픔들을 주님이 짊어지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감사로 고백하며 모든 병을 고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위로 받고 새 힘을 내셔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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